최영준 (전문의 소아청소년과)
한국에서 의대 졸업 후 미국에서 수련을 받은 한 친구는 미국의사들이 환자의 통증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한다.
금방 끝나는 치과 치료를 위해서도 NO 가스를 틀고, 간단한 정맥 내 주사나 절개 배농(I&D)을 할 때에도 굳이 마취 크림을 바르는 정성은 -예전의 일이겠지만- 응급실에서 '생투베이션'을 불사하던 우리나라 의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.
통증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정도는 문화에 따른 차이가 큰 것 같다. 아픈 것을 참는 게 미덕인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의료행위에 수반하는 통증을 묵묵히 참아내는 환자들이 많은 편이라는 것에 여러 의사들이 동의할 것이다.
어린 시절 "우리 OO 다컸네, 아픈 것도 잘 참고"하는 말을 옆에서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. 겁 많고 엄살이 심한 어른으로 자란 나 같은 환자는 통증뿐 아니라 '다 큰 어른이 그것도 참지 못하냐'는 의료진의 시선 또한 견뎌야 한다.
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의료행위 중 하나인 예방접종이 수반하는 통증에 대해서는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? 백신의 도입을 위한 임상시험을 할 때 백신의 반응원성(reactogenicity)를 보기 위한 지표 중 하나로 통증(pain)이나 동통(tenderness)의 유무를 확인한다.
수십 종류의 백신이 저마다 통증의 정도가 달리 나타나는 것을 보면 단지 주사바늘이 피부를 뚫는 것 외에도 백신 자체의 특성에 따라 통증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시험대상이나 연구 디자인, 척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백신 임상시험에서 20∼40% 정도가 접종 후 통증이나 동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. 다른 부작용에 비해 낮지 않은 빈도다.
특히 울고 보채는 것 외에는 통증을 표현할 길이 없는 아기의 경우는 어떨까? 예방접종이 아기들에게 가장 많이 가해지는 의인성 통증(iatrogenic pain)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.
의사들조차도 신생아는 통증을 거의 못 느끼며 느끼더라도 기억하지 못해서 신생아기의 통증은 무시해도 좋다고 믿었다.
그러나 근래의 연구들(Puchalski, 2002; Saniski, 2005; Bellieni, 2005)에 따르면 신생아의 통증은 성인보다도 심할 수 있고, 신생아기의 통증이 반복되면 향후 아동기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.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적은 양의 주사량이라도 접종할 때의 통증이 어른보다 클 것이고 미리 고지 받지 못한 통증은 심리적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.
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예방접종 후 통증에 관한 의견서를 통해 백신 접종에 수반하는 통증을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. 접종 직전 통증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접종 시 주사기를 뒤로 당기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.
또한 여러 백신을 동시 접종할 경우 통증이 적은 순서대로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.
미국소아과학회(AAP)에서도 마찬가지로 접종 중 모유수유를 하거나 25% 설탕물을 조금 먹이는 등 접종에 따른 통증을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한 의료진의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.
예방접종은 필연적으로 통증을 수반하며 이 통증은 적절한 예방을 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, 그리고 의사로서 그 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.
백신 접종에 따르는 통증은 최소화 할 수 있으며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접종횟수를 줄인다던 지(효능에 차이가 없다면), 주사 방법을 달리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. 접종 받는 아이의 주의를 돌리며 대퇴근 양쪽에 근육주사를 하는 한 의사의 예술에 가까운(?) patient-encountering을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.
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MOOxpT9q2mo